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자동으로 얼굴을 인식하고, 음성 명령으로 집안의 조명을 제어하며,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 상황을 판단하는 시대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작은 칩 속에 숨어있는 인공지능 기술 덕분입니다. AI 연산을 담당하는 임베디드칩은 크게 NPU, TPU, DSP로 나뉘는데, 각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공지능 작업을 수행하면서 우리 생활 속 디바이스의 성능을 좌우합니다. 세 가지 칩의 핵심 원리와 실제 적용 사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NPU, 스마트폰부터 자율주행까지 지능을 담은 작은 두뇌
NPU는 신경망처리장치라는 이름 그대로 인간의 뇌 신경망 구조를 본떠 설계된 프로세서입니다. 우리 뇌가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처리하듯이, NPU도 수천 개의 연산을 동시에 병렬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존의 CPU가 순차적으로 명령어를 하나씩 실행하는 방식이라면, NPU는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일하는 것처럼 행렬 곱셈과 벡터 연산을 한꺼번에 수행합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딥러닝 모델에서 필요한 대량의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칩셋, 애플의 A시리즈 프로세서, 퀄컴의 스냅드래곤에는 모두 NPU가 내장되어 있어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피사체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음성 명령을 즉시 이해하며, 문장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기기 안에서 직접 처리합니다. 클라우드 서버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고도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온디바이스 AI라고 부르는데, 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응답 속도 면에서 큰 장점을 제공합니다. 최근 KAIST 연구팀은 기존 GPU 대비 60퍼센트 이상 성능이 향상되고 전력 소모는 44퍼센트 낮은 NPU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기술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추론 성능을 대폭 개선하면서도 메모리 병목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NPU는 단순히 스마트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의 영상 인식, 산업용 로봇의 실시간 판단, 스마트 가전의 사용자 패턴 학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공동 개발한 차량용 엑시노스 오토 V920 프로세서에도 NPU가 탑재되어 주행 중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NPU의 핵심은 적은 전력으로 많은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모바일 기기나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IoT 센서에서는 전력 효율이 생명이기 때문에, 고성능 GPU를 사용하는 것보다 NPU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실용적입니다. 앞으로 NPU 기술은 더욱 진화하여 스스로 학습하는 뉴로모픽 구조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AI가 우리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TPU, 구글이 만든 AI 학습의 초고속 엔진
TPU는 구글이 인공지능 모델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시키기 위해 직접 개발한 전용 하드웨어입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화제가 되었을 때, 그 뒤에서 알파고를 학습시키고 실행시킨 것이 바로 TPU였습니다. TPU의 설계 목적은 명확합니다. 텐서라고 불리는 다차원 행렬 데이터를 극도로 빠르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딥러닝에서는 수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거대한 신경망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행렬 연산이 필요한데, TPU는 이러한 연산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MAC 어레이라는 연산 유닛을 대규모로 집적하여 CPU나 GPU 대비 수백 배의 효율을 냅니다. 구글은 TPU를 계속 발전시켜 왔습니다. 초기 버전인 TPU v1은 추론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v2부터는 학습까지 가능하게 되었고, v3에서는 성능이 8배나 증가했습니다. v4는 하나만으로도 초기 알파고 제로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졌으며, 최신 버전인 TPU v5와 올해 발표된 7세대 Ironwood는 추론 작업에 특화되어 무려 9,216개의 칩을 연결하여 세계 최대 슈퍼컴퓨터보다 강력한 연산 능력을 제공합니다. TPU는 주로 클라우드 환경에서 사용됩니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기업들은 TPU를 시간당 요금을 내고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대규모 언어 모델이나 이미지 인식 모델을 훨씬 빠르게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TPU는 클라우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글은 엣지 디바이스를 위한 소형 버전인 Coral Edge TPU도 개발했습니다. 이 칩은 IoT 카메라나 스마트 기기에 내장되어 실시간으로 AI 추론을 수행하며,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도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합니다. TPU의 장점은 전력 효율과 처리 속도의 균형입니다. 구글에 따르면, 다른 하드웨어에서 몇 주가 걸리던 머신러닝 작업이 TPU에서는 단 몇 시간 만에 완료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메모리 접근 방식을 최적화하여 데이터를 읽는 시간을 대폭 줄였기 때문입니다. TPU는 연산 과정에서 중간 결과를 메모리에 저장하지 않고 끝까지 계산을 이어가는 방식을 사용하여 병목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다만 TPU는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딥러닝과 같은 특정 작업에는 탁월하지만, 다른 종류의 연산에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TPU로 클라우드에서 대규모 학습을 수행하고, NPU로 엣지 디바이스에서 추론을 실행하는 식으로 두 칩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됩니다.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막대한 양의 GPU와 전용 칩을 구매하여 AI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데, TPU는 이러한 흐름에서 구글이 선택한 독자적인 해법입니다.
DSP, 실시간 신호처리의 숨은 일꾼
DSP는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로, 음성이나 영상 같은 연속적인 신호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특화된 칩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 통화를 할 때 배경 소음이 자동으로 제거되고,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을 때 손떨림 보정이 즉시 적용되며, 무선 이어폰에서 음질이 깨끗하게 들리는 것은 모두 DSP의 역할입니다. DSP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기술이지만,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DSP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고 필터링하는 작업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간단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직접 실행하면서 AI의 전처리기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퀄컴의 헥사곤 DSP는 스냅드래곤 프로세서에 내장되어 AI 연산을 가속하며, 특히 음성 인식과 카메라 이미지 처리에서 NPU와 협력하여 작동합니다. DSP의 가장 큰 강점은 저전력 실시간 처리입니다. NPU나 TPU처럼 복잡한 딥러닝 모델을 돌리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신호 분석과 패턴 인식은 DSP만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웨어러블 기기나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IoT 센서에서는 조금이라도 전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DSP는 이런 환경에서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가 사용자의 심박수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작업은 DSP가 담당합니다. 최근에는 AI 기능이 탑재된 DSP가 등장하면서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칩스앤미디어는 고화질 영상처리에 최적화된 NPU 기능을 가진 DSP를 개발했는데, 이 칩은 일반 NPU 대비 10분의 1 크기로 구현되면서도 DRAM 접근 없이 데이터를 처리하여 지연 시간을 최소화합니다. 이는 자율주행 자동차나 실시간 영상 분석이 필요한 보안 카메라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또한 DSP는 AI 시스템에서 데이터 전처리 역할을 합니다. 센서에서 들어오는 원본 데이터는 노이즈가 섞여 있고 형식도 제각각인데, DSP가 이를 깨끗하게 정제하고 표준화하여 NPU나 GPU로 전달하면 상위 프로세서는 핵심 연산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할 분담 덕분에 전체 시스템의 효율이 크게 향상됩니다. 의료 분야에서도 DSP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전도나 뇌파 같은 생체 신호는 매우 미세하고 노이즈에 민감한데, DSP는 이러한 신호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동차에서는 ADAS라 불리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서 DSP가 레이더와 카메라 신호를 실시간으로 처리하여 충돌 위험을 감지하고 자동 제동을 작동시킵니다. DSP는 화려하지 않지만 실용적인 칩입니다. 대규모 학습이나 초고속 연산보다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실시간 처리에 특화되어 있어, AI 시스템의 기반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 칩이 함께 만드는 AI 생태계
NPU, TPU, DSP는 각각 다른 목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현대의 AI 시스템에서는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협력합니다. 클라우드에서는 TPU가 대규모 학습을 담당하여 정교한 AI 모델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학습된 모델은 스마트폰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엣지 디바이스로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NPU가 빠른 추론을 수행하여 실시간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 과정에서 DSP는 센서 데이터를 깨끗하게 정제하여 NPU에 전달하는 전처리 작업을 맡습니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TPU는 지휘자처럼 전체 학습 방향을 이끌고, NPU는 연주자처럼 현장에서 빠르게 연주하며, DSP는 악기를 조율하는 조율사처럼 소리를 완벽하게 만듭니다. 삼성전자는 NPU 분야 인력을 2,000명 규모로 확대하며 독자 기술 확보에 나섰고, 국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는 데이터센터용 NPU를 개발하여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AI 하드웨어 기술은 전력 효율과 성능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최신 AMD 라이젠 AI 프로세서는 50TOPS의 NPU 성능을 제공하며, 인텔 코어 울트라와 퀄컴 스냅드래곤 X 시리즈도 강력한 NPU를 탑재하여 AI PC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11의 모든 PC를 인공지능 PC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를 위해 NPU가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결국 NPU, TPU, DSP는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강점을 살려 AI 생태계를 완성합니다. 클라우드의 거대한 연산 능력, 디바이스의 즉각적인 반응, 센서의 정확한 데이터 처리가 하나로 연결될 때 진정한 AI 시대가 펼쳐집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제품 속에는 이미 이 세 가지 칩의 지능이 숨어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혁신이 이들을 통해 현실이 될 것입니다.